인천에서 뱃길로 다녀온 중국 산동성 노산·태산
산동의 평야에 우뚝 솟은 두 명산을 오르다 월간마운틴 글・사진 안준영 기자 입력 2013.10.02 10:51 수정 2013.10.02 10:56
↑ 태산의 산호문을 지나서 대천촉봉(1140m)을 바라보고 있다.
↑ 청도의 노산은 중국의 8대 도교 발상지 중의 하나이다. ‘이(離)’는 팔괘 중에서 정남쪽이며, 이문은 거봉을 기준으로 정남에 있다.
노산이 있는 청도는 산동성에서 부성급시이며, 중국에서도 네 번째로 큰 항구도시이다. 하지만 100여 년 전만 해도 청도는 교오라는 작은 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청도가 인구 800만이 넘는 대도시가 된 것은 청나라 말기인 1889년에 해군이 주둔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청일 전쟁 후, 청나라는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고 요동반도・대만・팽호 제도 등을 일본에게 할양했다. 그러나 러시아・프랑스・독일의 삼국간섭으로 요동반도는 반환됐다. 그 결과로 독일은 중국과 합의하여 청도를 12년간 통치하였다. 독일이 청도를 통치하는 동안 노산의 물로 맥주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칭다오 맥주'다. 칭다오 맥주 공장은 1903년에 생겼으며, 지금은 중국에 73개, 그 중 청도에는 7개의 공장을 두고 있다. 맥주의 맛은 결국 물맛이 좌우하기 때문에 그 맛은 지역마다 다르다고 한다.
노산은 청도항에서 30km 정도 동쪽으로 치우친 해안에 있다. 중국은 서쪽으로 갈수록 산이 높아지고, 동쪽일수록 평야가 많은 지형이다. 산동 지방은 우리나라 면적의 거의 두 배나 되면서도 90%가 평야 지대라 산이 드물다. 그럼에도 청도의 노산은 동쪽 해안에 있으면서도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를 지니고 있다. 골짜기가 많아 물이 풍부하고 그 맛도 독특하다. 독일군이 주둔해 있었다 하더라도 노산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칭다오 맥주 또한 없었을 것이다. 18,000km의 달하는 중국 해안선에 있는 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인 노산의 정상은 군사시설이 있어서 올라가지 못한다. 대신 그 옆에 바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거봉(巨峰・1132m)을 오를 수가 있다. 노산은 1982년에 중국 정부에서 최초로 지정한 44개의 풍경 명승구 중의 하나이다. 예부터 기암괴석과 또 바다가 어우러진 노산의 경치를 찬탄하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다. 명대의 순무(巡撫)였던 조현찬은 '해상제일명산(海上第一名山)'이라 하였다. 또 〈제기(齊記)〉에는 '태산이 아무리 높다 해도 동해의 노산만 못하다(泰山雖雲高 不如東海勞)'고 전해진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함께 노산은 중국의 8대 도교 발상지 중 하나로 태청궁, 태평궁 등의 도교사원이 있으며, 진시황이 불로초를 얻기 위해 노산으로 사절단을 보내기도 했다.
↑ 태산의 정상인 옥황정에는 옥황묘가 있다. 이곳에는 도교에서의 최고의 신인 옥황대제가 모셔져 있다. 그 밑으로 산정 부근에는 여러 도교 사원이 있다.
셔틀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구간이 꽤 긴 편지만 도로 양옆으로는 노산에 관한 바위 조각들을 보는 재미에 전혀 지루하지 않다. 무당파의 시조이며 태극권을 창시한 장삼풍과 황색 도포를 두르고 소를 타고 있는 노자의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또, 팔괘와 함께 태극무늬가 바위에 새겨져 있어 노산이 도교의 발상지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독특한 바위 조각품과 하늘 높이 솟은 암봉, 굽이치는 도로에 정신이 팔려 있다 보면 어느새 해발 400m에 있는 케이블카 정류장 앞이다. 천지순화(天地淳和)라고 쓰인 커다란 산문을 통과해서 노산 거봉을 오르는 길로 접어든다.
노산의 길은 중국의 유명한 산이 거의 그렇듯 돌계단으로 돼 있다. 산문에서부터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줄곧 계단이고 숲에 가려서 경치를 즐기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걸어 올라가면 '자광동(慈光洞)'이라는 동굴을 볼 수가 있다. 케이블 상부 정류장에서 약간 못 미친 곳에 팔각정이 있고 그 옆에 자광동이 있다. 자광동은 1m가 안 되는 높이와 60cm 정도로 폭이 좁은 입구로 돼 있다. 동굴 안은 한 사람 정도가 들어가서 앉을 정도가 되고, 둥근 천장에 붉은 글씨로 '慈光洞'이라고 새겨져 있다.
자광동에서 더 올라가면 이문(離門)이 나온다. '이(離)'는 방위에서 정남 방향이며, 이곳이 거봉의 정남쪽이라고 한다. 이문을 지나면서부터는 숲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올라오는 동안 볼거리가 없어 답답하던 숨통이 그제야 트인다. 거봉의 트레킹 코스는 거봉을 중심으로 이문을 시작해서 팔괘에 따라 손문(巽門), 진문(震門), 간문(艮門), 감문(坎門), 건문(乾門), 태문(兌門), 곤문(坤門)을 거쳐 다시 이문으로 돌아온다.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에서 20분 정도를 오르면 손문이 나온다. 손문에서는 과일과 음료를 파는 상인이 있다. 손문에서 약 10분만 가면 거봉이 나온다. 거봉에서부터 진문, 간문 등을 따라서 노산의 계곡과 폭포, 동굴들을 유람해야 했지만 다음날 태산 트레킹을 해야 하는 바쁜 일정 때문에 거봉에서 원점 회귀하여 산행을 마무리했다.
↑ 남천문에서부터 ‘십팔반(十八盤)’이라는 계단으로 이어진다. 길이 800여m에, 수직고도 400여m이며 1600여개의 돌계단으로 돼 있다.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길은 마치 하늘을 오르는 것 같다고 한다.
'기는 동쪽에서부터 온다'하여 오악 중 동악인 태산을 으뜸으로 친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조선시대의 문인 봉래 양사언의 시조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태산은 산동성 태안에 있다. 태안은 청도에서 서쪽으로 300여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동시간만 3~4시간이 되어 체감으로는 서쪽으로 꽤 이동한 것 같지만 중국 전체로 봤을 때는 극동에 가깝다.
중국의 오악은 전국시대 이후 오행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지금의 중국 5악은 6세기말에 일부 바뀐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오악은 동쪽의 태산을 비롯해 서쪽의 화산, 남쪽의 형산, 북쪽의 항산, 중부의 숭산이 있다. 예부터 중국의 황제들은 오악에서 태평을 기리는 봉선의식을 지내왔고, 정상 또는 산기슭에는 도교 사원이 많이 있는 게 특징이다. 진시황을 비롯한 중국의 72명의 황제들이 태산에 올라 봉선을 지냈다고 한다. 그 중 한무제가 7번, 건륭제가 11번 태산을 찾았다고 전해진다. 중국에는 일산(一山), 일수(一水), 일성인(一聖人)이 있다. 이 중 일산이 바로 태산이다. 덧붙여, 일수는 황하, 일성인은 공자.
↑ 등산장비 하나 갖추지 않고 태산을 오르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한국 등산객들과 사뭇 다르다.
천지극장에서 왼편으로 난 길이 태어도의 초입이다. 길은 돌계단으로 되어 있고, 갈림길도 없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없다. 천지극장에서 20분 정도만 올라가면 성성정이 나온다. 쉼터가 마련돼 있으니 계단길이 힘들다면 이곳에서 쉬었다 가면 된다. 성성정 이후로 천자폭과 같이 태산의 아름다운 산세를 즐기며 산행할 수 있다. 천자폭이 보이는 전망대를 지나서 선학만에 닿으면 구름다리를 건넌다. 계곡의 폭이 넓고 물이 사철 마르지 않아 계곡이 아닌 만(灣)이라고 부를 정도이다. 물이 찰랑이는 게 학이 춤추는 것과 같다하여 선학(仙鶴)이라고 한다. 이곳을 지나면 또 용척 또는 잉어등이라는 곳이 나온다. 비탈진 바위가 드러누운 용과 같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바위의 경사가 60도 가까이 되어 원래는 암벽 등반을 해야 하지만, 일일이 바위를 깎아서 계단으로 만들어 놓았다. 용척에서 산호문까지는 계속해서 올라가는 계단으로 이어진다. 산호문은 산붕우리 중간에 있는 문으로 '망천문'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의 이름대로 힘들게 올라온 등산객들은 잠시 숨을 고르며 하늘을 바라본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진시황이 태산에 오를 적에 이곳에서 문무대신들이 만세삼창을 하였다 해서 '삼호문'이라고도 한다. 산호문을 지나 약간의 평탄한 길을 걷고 나면 다시금 올라가는 계단으로 이어진다. 대천촉봉과 천공개물을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지나면 '풍마욕(風魔峪)'이라는 골짜기가 나온다. 골짜기가 깊은 지형 때문에 돌풍이 많이 불어 얻은 이름이다. 옛 사람들은 돌풍을 마귀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석하(石河)'라고 부르는 너덜지대 근방에 케이블카 정류장이 있다. 케이블카를 타면 40분 정도 산행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북천문까지 계단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케이블카를 타고 이 구간을 생략하더라도 놓치는 볼거리는 없다. 오히려 케이블카를 타는 쪽의 태산의 산세를 더 즐길 수 있다. 북천문이 있는 곳까지 오르면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은 조금 지저분한 편이지만 수도가 들어와 있기 때문에 물을 쓸 수가 있다. 이곳에서 약 20분 정도를 더 가면 정상인 옥황정에 닿는다. 양옆으로 키 큰 나무가 없어서 산의 능선과 계곡을 두루 살필 수 있다.
태산 산정에 부는 바람에는 은은한 향 냄새가 실려 있다. 옥황정에는 옥황묘가 있다. 이곳에는 도교의 여러 신 중 최고의 신인 옥황대제가 모셔져 있다. 중국인들은 이곳을 찾아 향을 올리고, 절을 하면서 복을 기원한다. 옥황정 밑으로는 벽하사 등 여러 신들을 모시고 있는 도교 사원이 많이 있다.
↑ 중천문으로 내려가는 하산 길에 인민복이 늘어놓아져 있다. 태산에서 하룻밤을 묵는 등산객들에게 대여해 주는 방한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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